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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벽하지도 이상적이지 못한 가족
    유월바람 2020. 11. 12. 21:49

    #아프지만 감사한 관계, 가족

     

    ‘가족’이라는 단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다.

    마음 한구석이 저려오는 듯할 수도, 가슴이 따뜻해질 수도, 눈물이 나거나 행복할 수도, 화나 원망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마다 다 다른 감정과 기분이 드는 이유는 아마 가족의 구성원과 가정환경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런던 London으로 유학을 와서 주변 사람 혹은 친구들이 종종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가족이 그립고, 가족 옆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가족, 특별히 엄마를 그리워하는 경우들을 보면서 내가 가족을,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새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가족을 보고 싶어 하지도, 엄마가 그립지 않았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도 한 달에 한 번은 부모님 계시는 고향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못 보고 산 적이 없었기에 보고 싶을 새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런던에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도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과 엄마를 왜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인지, 내 감정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어 그립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 없는 이 마음이 날 더 외롭게 했다. 그러면서 가족과 가족의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보고 싶어 그립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 없는 이 마음이 날 더 외롭게 했다.' © Alex Powell Pexels

    나의 어린 시절의 가족, 엄마에 대한 기억들로 돌아가 보았다. 어려서부터 엄한 엄마를 무서워했고, 엄마가 내게 요구하는 모습이 부담이 될 때가 많았다. 내 안에 답답함이 있었고,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려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고 부담과 상처로 받아들여 왔던 것이 엄마와의 애틋하고 진한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상한 감정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 괴로운 감정을 끝까지 마주하고 나니 오히려 회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관계에서 오는 상처로 인해 일반적으로 엄마에게 자연스럽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지 못한 것은 마음이 아팠지만, 이 시간을 통해 엄마를 여자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만을 집중하기보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방식이 다를 뿐 나도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프지만 감사한 시간 © Pexels

    한국과 가족을 떠나 런던에서 한 발짝 물러나 나와 엄마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그러나 동시에 주관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아프지만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마 한국에 계속 가족과 함께 있었더라면 이런 감정들을 알지 못하고 형식적인 관계로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한국에 가족과 엄마를 생각하면 애틋하다. 가족들에게 힘든 일이 있기도 했고, 부모님들께서도 연세가 드시면서 강하셨던 성격이 많이 약해 지신 것을 보면서 내가 감정적으로도 어른이 되어 이해와 포용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나의 관계와 감정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관계와 감정이라는 것도 노력을 하면 회복이 가능하다 사실이 놀라웠다.

     

     

    #새로운 가족의 시작

     

    가족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정의한다.

    런던 유학시절에 만난 인연으로 나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계속 런던에 살고 있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만 1년, 새로운 가족을 만든데 드는 시간은 내 생각보다 짧았다. 어떻게 평생의 가족을 만드는 이토록 중요한 일인데 나는 1년 만에 결정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사람과 결혼이란 걸 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의 결정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남편이 먼저 자연스럽게 ‘결혼하면,-‘이라는 전제를 자꾸 꺼냈고, 나도 점점 그 말에 익숙해졌다.

    친구로 시작한 우리는 서로를 어떤 기준을 두고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힘들 때 위로해 주며 돕고, 기쁠 때 함께 나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쿵작이 잘 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부분도 발견했지만 굳이 서로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설렘과 편안함이 함께 공존하는 시기가 와버렸다. 그 시기가 있었기에 우린 평생의 반려자가 될 수 있었다.

     

     

    균형을 맞추어 가는 가족 © Pexels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결혼 아래의 가족이란 것은 늘 로맨스라는 장르는 아니다. 살면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도 관계라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처음에는 관계라는 것은 상대적이라고만 생각했고. 서로가 이 관계를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을 통한 가족은 상대적이고 계산적인 관계가 아닌 결국 사랑의 관계였다. 사랑이라는 것은 불타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이해와 포용, 용납 그리고 책임과 희생을 동반하는 엄청난 단어임을 배웠고, 사랑의 관계는 쌍방이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일방적이라 해도 유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을, 남편은 남편대로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떨 때는 자신이 더 많이 양보하고 이해한다고, 또 어떨 때는 상대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고 있다고 각자가 생각할 것이다. 그 균형을 계속 맞추어 감으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난 후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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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하지도 이상적이지 못한 가족’이라는 것을 통해 나는 지금도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깊은 내면의 감정과 부족함을 들여다보고 있고,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근육들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Nguyễn Thanh Ngọc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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