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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I - 닫힌 사고방식 안에는 직업의 귀천이 존재한다.
    유월바람 2020. 8. 24. 19:58

    어려서부터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우고, 그런 말을 들으며 자라긴 했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에 뛰어들고 나니 그건 말뿐임을 느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반대에도 끝까지 고집을 부려 돈 많이 드는 미대 진학을 했었고, 디자인 design 전공으로 졸업한 나의 첫 직장에서의 월급은 부모님의 기대치의 한참 아래였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집에 내려갔었는데 그때마다 터미널 terminal로 데리러 나오신 엄마의 첫인사는 디자이너 designer로의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폭풍 잔소리였다.

    맨날 야근은 엄청 시키면서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고 그렇게 돈 많이 들어가는 미대 갔는데 어째 이렇게 월급이 적은 거니? 월급 받아서 한창 예쁘게 하고 다닐 나이인데 그 월급 받아가지고 뭐 쓸데나 있겠어?”

    나는 그렇게 일한 시간에 비해 월급은 너무 적은,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하찮은 새내기 디자이너였다.

    이렇게 나의 일상과 주변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직업의 높고 낮음에 대한 인식은 아주 많이 스며들어 있었다.

     

    스스로 작아지는 순간이 있다. © Daria Shevtsova Pexels

    런던 London으로 와서 3개월 후부터 아르바이트 part time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런던에 체인점으로 있는 요! 스시 Yo! Sushi라는 캐주얼 casual 한 회전 초밥집에서 연락이 와서 트라이얼 trial 하루 해보자며 오후 5시쯤에 출근하라고 했다. 한국에서 대학생 때 과외나 학원 강사 알바만 해본 경험이 다였던 나는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오픈 키친 open kitchen 이여서 주방 안에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만 알려주고는 저녁 타임 time이 시작되었다. 정말 정신없이 바빴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이렇게 바쁠 때 물어보는 것조차도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거의 4시간 30분 동안 어리바리하게 보내다가 끝이 났다. 결국 채용되지 못하고 그날 하루 한 것 없이 삭신만 쑤셨다. 살짝 자존심도 상했지만, 그날은 내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형편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또 다른 기회가 주어져 로컬 local의 작은 일식집에 면접을 보았고, 일주일 정도 주방에서 트라이얼 기간이 주어졌다. 지난 어리숙한 실패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조건 물어보자!’는 마음 자세로 주변을 잘 살피고 모든 촉을 동원해 눈치껏 엄청 바쁘게 움직였다. 영국 중년의 사장님은 나를 매의 눈으로 관찰했지만, 일본 세프 chef 님과 주방 staff 들은 웃으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결국 일주일 트라이얼 기간을 다 마치고 나는 합격해서 주방 설거지 및 보조로 일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낯선 땅에서 다른 언어로 좁은 주방 안에서 나를 어떤 식으로든 필요로 한다는 것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나의 주된 일은 출근하면 가장 먼저 바닥 청소부터 시작하고 미리 야채 씻어서 다듬어 놓아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눈코 뜰 새 없이 주문 들어온 간단한 핫 푸드 hot food를 조리해서 내보내고, 손님들이 먹고 주방으로 들어온 그릇들을 틈틈이 설거지를 하는 일이었다. 초반에는 배우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잘리지 않으려고 엄청 긴장했던 탓에 다른 생각들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 Flora Westbrook Pexels

     

    몇 주가 지나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니 바닥 걸레질을 하고, 쌓여가는 설거지를 할 때면 문득문득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들면서 급 우울해졌다. 그 이유는 레스토랑 청소를 하고, 주방 구석에서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 일을 할 거라고는 내 평생 상상도 못 해 봤고, 내 안에 직업에 대한 좁은 시야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 곧 그런 생각들로부터 정신을 차려 내가 런던에 왜 왔는지를 상기시켰다. 나의 배움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런던에서 버티고 먹고살아야 했기에 어떤 일이든 나를 써주고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유학생으로 레스토랑 restaurant에서 돈도 벌면서 식사 한 끼는 해결이 된다는 것도 큰 장점이자 축복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바닥 걸레질하고 쌓인 설거지를 하는 일은 결코 우울해할 일이 아니었다. 그 레스토랑에서 일한 지 일 년 조금 안되었을 때,  hall로 나가서 예약 전화도 받고, 손님들에게 주문도 받고, 음식을 서빙 serving 하는 일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대학원 진학 후에는 수업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1년 조금 넘게 일한 일식집을 그만두고, 저녁에만 일할 수 있는 한식 고기 BBQ 레스토랑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학교와 가까운 오피스 office 아르바이트 일을 구하게 되어서 얼마 일 안 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법한 일을 런던에 와서 외국인으로, 유학생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했던 그 경험은 돌아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값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런던에서 살고 부딪히며 해왔던 아르바이트들을 통해서 다양한 일과 직업에 대해 조금 더 열린 생각과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세상과 사람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배움 이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달라졌다고 해도 백인에게는 관대한 편이고, 흑인이나 동남아시아인 등에게는 색안경을 끼고 보며 살짝 무시하는 경우가 아직은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자기네 나라에서는 똑똑하고 배운 사람일 수도, 자신의 꿈과 목표를 가지고 온 사람일 수도 있다. 한국인도 다른 나라에 가서 언어가 부족하고 문화가 달라서 자리 잡고, 먹고살기 위해 이것저것 하며 부딪히며 외국인 노동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이 우리의 가족, 친척이나 친구 중에 한 사람 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품어주기 © Ketut Subiyanto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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