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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 직업을 얻은 Life Lesson
    영롱한 산소 2020. 9. 14. 23:23

    중학교 2학년 때쯤 햇빛이 뜨거운 어느 여름날,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마주치게 된 몇 명의 영국 남학생들이 나보고 손가락질하며 인종 차별적 욕을 했다. 아기 때부터 살았던 영국이어서 그때는 어떻게 보면 한국보다도 더 집 home 같이 느껴졌던 영국이었고 한국 친구들보다 영국 친구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그날의 일은 나한테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뒤로 얼마 후 동생이랑 동네 빵집에 빵 사러 갔다 영국 할머니와 마주쳤는데 우리의 인사에 무턱대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화를 내셨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너는 앞으로 뭐가 될 거니,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전 변호사가 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마음에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었다.

    "전 변호사가 될 거예요" © Pexels

    영국은 고등학교 1학년 때 GCSEs라는 시험을 보는데,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시험이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필수과목 3개 제외하고 나머지 7개 과목은 선택할 수 있었다. 선택은 중학교 2학년 끝날 때 선택하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2년 동안 공부하고 시험 보는 시스템이다. GCSEs를 마치면 A-Levels 시험을 보는데, 선택 과목 수를 제외하고는 GCSEs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영국 대학교들은 (다른 것도 보지만) GCSEs와 A-Levels 결과부터 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시험들이다.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로부터 나의 모든 학업 방향은 변호사가 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GCSEs와 A-Levels 과목을 선택할 때도 어떤 과목이 제일 유리할지 부모님과 따지고 또 따진 후 선택했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방학 때 놀지도 않고 변호사실 찾아다니면서 인턴십 internship도 하고 또 다른 특별활동도 열심히 해서 나의 이력을 계속 채워갔다.

    어차피 변호사는 평생 할 수 있으니 대학에서는 다른 과목도 공부해보라는 선배의 조언에 대학에서는 고고인류학을 공부했지만 이 선택 또한 변호사 되는 큰 그림에 일환이었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잠시 고민을 했었다 - 정말 변호사가 되는 것이 내 길인지. 그때 부모님의 한마디에 생각을 다잡고 영국 로스쿨 law school에 진학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꽤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문제는 대학을 졸업했을 때부터였다. 영국은 변호사가 되려면 로펌 law firm에서 2년의 연수 계약 training contract 기간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은 시스템이 바뀌는 중이다) Training contract는 법대생 / 법 대학원생 일 때 (즉, 졸업 전에) 미리 받아 놔야 졸업하고 버리는 시간 time gap 없이 바로 자격증 연수 training에 임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연수 계약 training contract였다. 법 대학원 2년 과정 중 첫해에 엄청난 양의 지원서를 준비하였었는데 다 떨어졌다. 처음 몇 번 떨어질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더 잘 그리고 열심히 준비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40~50번 넘게 떨어지니 자신감도 자존감도 큰 타격을 받았다. 결국 대학원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는데 이때 내가 그동안 목표, 즉 변호사 되는 것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나 자신이 누군지 살펴보는 것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가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인데 그때까지 내 인생은 알게 모르게 ‘내가 누구인지 - Being’ 보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 Doing’에 더 집중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나의 “Being”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로펌으로부터 연수 계약 training contract 제안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한 번 더 시도해본 것인 데 25개의 지원서 중 딱 한 군데에서 제안 offer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 면접은 내 평생 기억 남을 면접이다. 면접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33층 회의실에 앉아 노을빛을 적신 탬즈 Thames 강을 보면서 감탄을 하느라 면접관이 회의실에 들어온 줄도 몰랐었다. 그렇게 시작한 면접은 20분도 안 채우고 끝났었는데 (보통 30-40분이 기본이다)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수다만 떨고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마침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과 티 타임 tea time을 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입사하고 면접 봐주신 분에게 나를 뽑은 이유에 대해 여쭤봤었는데 내가 뭘 엄청 많이 하고 성취하였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누군지 (나의 “Being”)가 너무 좋았었다고 하셨었다.

     

    노을빛을 적신 탬즈강 © Pexels

    흔히 우리의 “Doing”이 우리의 “Being”을 정의 define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한국, 영국 다 살아보니 한국 사회에서 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Being”은 우리의 “Doing”보다 훨씬 더 크다.

    내가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한동안 ‘무슨 대학에 입학한 누구’로 그리고 그다음엔 ‘무슨 대학을 졸업한 누구’ 그리고 그다음엔 ‘변호사 누구’로 여기저기 소개되었다. 나의 성취를 인정해 주는 것은 감사했지만, 그 성취한 것들이 마치 ‘나’를 정의하는 것처럼 자꾸 이야기가 되어서 많이 불편한 적도 많았었다. 내가 성취한 것은 맞지만 ‘나’를 정의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Doing” “Being”의 결과일 뿐; “Being”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 되어야만 하는 것이 “Doing”이라는 것; “Doing” “Being”의 결과인 만큼 “Being”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워킹맘 working mom으로써 아이를 키우면서 더더욱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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