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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움
    이상주의자 2020. 11. 16. 22:33

    사업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부모님 회사 들어가서 일하게 되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많이 것들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배웠고, 또 필요하면 언제나 부모님 조언을 들을 수 있으니 이제는 나도 내 사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사업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아프게 깨달았던 것은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거다. 원래부터 도전의식이 강한 나는 항상 내 한계보다 높은 목표를 세워서 달리는 걸 좋아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들을 시도하는 것을 즐겼었다. 장녀이지만 남들이 봐도 장남처럼 키우실 정도로 부모님께서는 나를 강하게 키우셨고 항상 안전선 안에서 살아왔던 나는 정말 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9월 초에 가방 첫 오더 order를 발주하고 가죽 값과 가방 생산 값 50% 선금을 낸 후 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런던 London에서 시즌마다 열리는 <Pure London> 박람회에 비쌌지만 적당한 크기의 부스 booth를 계약했고 런던 시내에 있는 편집숍들을 접근하기 시작했다. 10월 초에 파리 Paris 출장을 갔는데 며칠 동안 메일 mail을 보내도 답이 없고 전화를 해도 안 받는 가죽 공장 사장한테 드디어 연락이 왔다. 무슨 문제가 생겨서 오더를 발주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 생산을 시작 못 했다면서… 순간 모든 게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나에게는 최악의 소식이었다. 가죽이 늦어지면 당연히 가방 생산이 늦어질 거고, 가방 생산이 늦어지면 겨울에 판매하려고 했던 색상은 타이밍 timing을 놓치고 내년 봄/여름 시즌 S/S season이 시작할 때쯤 출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니었는데… 파리의 하늘이 나를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숙소에 들어가면서 아빠한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큰일을 처음으로 혼자서 하게 됐는데 난 최선을 다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을 보고 화가 많이 났다. 그리고 서서히 그 화 안에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Time-to-market을 놓치면 판매하기 힘들고, 판매가 안되면 재고만 쌓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까지 하게 되니까 겁이 덜컥 나고 난 아빠한테 어린아이 같이 울면서 호소를 했다. 그런데 아빠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괜찮아, 원래 살다 보면, 그리고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일들 생기는 거야, 괜찮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30년 넘게 사업하신 부모님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이보다 얼마나 더 힘든 일들을 겪으셨을까… 부모님의 내공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아직 갈 길이 멀었지 뼈저리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Mayfair 편집숍에서 나오는 길 © 이상주의자

    9월에 매이페어 Mayfair 쪽에 있는 편집숍에 지원 apply을 했었는데 한 3개월 뒤에, 거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돼서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었다. 첫 영업 미팅 meeting 이어서 떨리기도 했지만 너무 신나고 기대돼서 마음속으로는 폴짝폴짝 뛰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면접을 보면서 편집숍 대표가 바로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했고 2월 첫 주에 가방을 숍 shop에 입고하기로 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나에게는 첫 사업을 하는데 계획이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심장이 땅에 떨어지듯 쿵-하고 다리에 힘이 빠지곤 했다. 2월 초에 입고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9월에 발주했던 오더가 1월 중순이 됐지만 생산이 끝나지를 않았다. 마음 졸이면서 매일 공장을 독촉을 해도 내가 원했던 것처럼 생산이 더 빨라지지 않았다. 1월 마지막 주가 다가오는데도 생산이 마무리될 기미가 안 보여서 속이 타기만 했다. 이 편집숍에 문제없이 입고를 하는 것이 마치 내 인생의 전부가 달린 것처럼 내 모든 정신과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각 모델마다 2개씩을 먼저 끝내서 DHL로 보내주기로 했다. 속이 다 타는 2월 1일 오후 4시 반에 가방을 받고 콜택시를 불러서 가방을 갖고 편집숍을 향했다. 그날은 inventory 하는 날이라 오후 6시 전까지 못 오면 입고가 지연 delay 될 거라고 해서 울고 싶은 마음 참으면서 런던 시내 퇴근 시간 rush-hour을 뚫고 5시 55분에 도착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온몸과 마음이 불에 녹인 촛물이 된 것 같았다. 마음 졸이고 이를 악물며 달리고 심장이 쪼그라들다가 신나고 기대됐다가 마음이 떨어져 굴러가는 롤러코스터 roller coaster를 경험하면서 난 정말 간이 작아서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로 크게 배운 게 된 것은, 열심히 꾸준히 하다 보면 길이 열리게 되는 일이 있는 반면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죽어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거다.

    그다음 해에 런던과 파리에 패션 fashion 박람회 참석하기 위해 인턴 intern 두 명을 뽑게 되었다. 런던 박람회는 성과는 없었지만 무사히 잘 마치고 파리는 다를 거라는 기대로 들뜬 마음으로 유로스타 Eurostar 열차를 탔다. 이번에는 바이어들을 만나는 것만 목표가 아니라, 파리 패션위크 Paris Fashion Week에 참여하는 인플루언서 influencer 들을 접근하는 게 2차 목표였다. 꼭 만나야겠다는 인플루언서들을 생각해놓고 PFW 마지막 날에 하는 샤넬 Chanel 패션쇼 장소로 씩씩하게 갔다. 인턴들에게 명함을 주면서 우리의 타깃 target을 보면 무조건 가서 인사하고 명함을 주라고 했다. 그런데 인턴들은 나한테 미쳤다고, 어떻게 이런 일을 하냐면서 멀찍이 서서 구경만 했다. 패션쇼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내가 만나보고 싶은 얼굴들이 보였다.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처럼 돌진을 했는데, 인턴들은 창피해서 고개를 돌리거나 숨기 시작했다. 나는 아랑곳도 안 하고 여기저기 인사하면서 명함을 돌렸다. 내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결국 못 만났지만, 그리고 몇몇은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친절하게 인사와 명함을 받아주고 대화까지 나눈 블로거 blogger도 있었다. 다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인턴들은 여전히 나더러 미쳤다고 했다.

     

    Intragram workshop을 마치고 © 이상주의자

    PFW이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났다. 가방이 안 팔려서 인턴들을 해고하게 되었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시도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제일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인스타그램 패션 파트너십 부서장 Instagram Fashion Partnerships Director였는데 이 분은 돈 받고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본인 인스타그램 instagram 올리는 패션 아이템 item은 무조건 히트 hit를 치게 되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만나야 했다. 인스타그램 이 계정 저 계정 넘어가면서 조사를 하다가 같이 일하는 직원의 계정을 우연히 찾게 됐다. 내 브랜드 계정을 어떻게 활성화해야 될지 모른다는 핑계로 통화를 하게 되었고 메일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렇게 연락하다가 드디어 그 부서장과 메일로 연결이 되었다. 그러고 몇 주 후에 런던으로 온다는 소식을 본인 인스타그램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언제 오는지, 혹시 만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바로 메일을 보냈다. 정말 신기하게도 몇 분 뒤에 답장이 왔고 결혼식 때문에 오게 됐지만 나중에 자기 팀이 연락할 거라는 말만 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틀 뒤에 런던 페이스북 사무실 London Facebook Office에서 초대장 invitation을 보내왔는데, 그 대표와 그동안 연락 주고받았던 직원이 함께하는 워크숍 workshop에 초대를 한 거였다. 당일 페이스북 사무실에 도착을 했더니 Press만 초청된 이벤트 event였다는 걸 알게 되어서 놀랐는데, 더 놀란 것은 워크숍을 하면서 내 브랜드 brand가 언급되고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워크숍이 끝나서 드디어 부서장과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같이 일하는 직원은 다음 날 같이 아침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페이스북 사무실을 나오면서 내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는데 갑자기 인턴들이 생각났다, 나를 얼마나 비웃었는지…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계속 꾸준히 파고들게 되면 언젠간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항상 그런 건 아니다. 2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짜릿한 순간이 몇 번 있긴 있었지만, 내가 투자한 돈, 시간, 에너지, 그리고 내 몸뚱어리를 있는 그대로 다 쏟아부었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런던은 스페인 Spain에 비해 기회의 땅이어서 도전해 볼 만한 곳이긴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심한 곳이다. 내가 사업의 실패를 겪게 된 정확한 이유를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러 원인들 중 하나는 패션계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거다. 내가 처음에 살았던 윔블던 Wimbledon 집주인 언니의 말대로, 맨땅에 헤딩을 했던 것이다. 물론 도전을 해봐야 아는 거고, 또 하다 보면 좋은 기회들이 생겨서 판매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될 수도 있지만, 난 도전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고 좋은 기회도 생겨서 판매가 일시적으로 잘 되었던 몇 주의 기간이 있었지만, 그걸로 끝나고 더 이상 발전이 없었다. 사람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다 보면 잘 될 거라는 말을 하는데, 사람 안에 있는 에너지를 전부 다 소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안 풀리면 냉철하게 판단할 필요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떻게 보면 처음에는 정말 순수한 마음과 이상적인 생각이 있어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수함과 이상주의적인 생각이 자신의 판단력을 흐리게 된다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순수한 것도 좋지만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하고, 꿈은 꿔야 하지만 끝까지 두드려봐야 하는 문과 두들기다가 그만둬야 하는 문이 있다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상주의자인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었지만 그 덕분에 이제는 에너지와 시간 소비를 조금이나마 더 지혜롭게 하고 있지 않나..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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